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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병일기鄕兵日記

이 『향병일기』는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안동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예천·의성·군위 등을 비롯한 안동 주위의 열읍들을 모아 열읍향병부대를 편성하여 의병활동을 하면서 기록한 임란일기이다. 특히 문경 당교전투에서 ‘진천뢰’를 왜군의 진지에 투척하여 적을 섬멸하는 내용 등은 어느 임란일기에도 없는 귀중한 자료로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3호>로 지정받았다.
영봉서원기迎鳳書院記

퇴계 이황이 지은 영봉서원에 대한 기문이다. 경북 성주에 있었던 이 서원은 나중 천곡서원(川谷書院)으로 개명되었다. 이 서원은 1559년(명종14) 성주목사(星州牧使) 노경린(盧景麟)이 고을 사림과 함께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과 문충공(文忠公) 이인복(李仁復)을 위하여 연봉산(延鳳山 또는 迎鳳山) 밑에 세운 서원이다. 퇴계 선생이 1560년(명종15)에 이 기문을 지었는데, ‘가정 경신 7월 하한 진성 이황(嘉靖庚申七月下澣眞城李滉)’이라는 기록이 말미에 있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간찰

서애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간찰의 요지는 너의 형이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었으니 네가 몸이 온전히 나았으면 왕래하면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다시 연락하라는 내용이다. 간찰의 앞과 뒤가 비록 탈락되었으나 매산 김선원의 후지[後識]가 붙어 있으며 국보인『 징비록』과 비교해도 글자의 크기와 필체가 아주 닮아있다.
송촌화첩 松村畵帖

송촌(松村) 금안조(琴顔操)의 수묵화 그림화첩으로 한지에 7점, 거친 삼베에 금분으로 2점을 그렸다. 금안조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선생의 증손으로 자는 여우(汝愚), 호는 송촌(松村)이다.
학봉 선생 시초 鶴峰先生詩抄

『학봉 선생 시초(鶴峰先生詩抄)』라는 제목으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선생의 시를 초록한 시첩이다. 학봉 선생 문집에도 실려 있는 시들로 초록한 시는 모두 116쪽이다. 뒤편에는 황준량(黃俊良), 김유(金綏) 등 사우들의 시도 초록하였다. 정사(丁巳)년 3월에 후학이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 모별자(母別子)」 이 시 한 수를 통해 학봉 선생의 애민사상에 나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학봉 선생은 당시의 민중의 처지를 투철히 인식하고 항상 민중의 편에 서서 현실을 관찰하며 사태를 설명하였다.
해동초성첩 海東草聖帖

조선 중기 초서(草書)의 대가로 유명한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 중종 16~1575, 선조 8)의 친필 글씨첩이다. 그는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로 초서에 능하였던 조선 중기의 서예가이다. 그의 필적은 『동국명필(東國名筆)』·『대동서법(大東書法)』 등의 법첩(法帖)에 올라있다. 그의 초서 서풍은 사위인 옥산 이우를 포함하여 이산해(李山海), 이지정(李志定) 등에게 전해지며 조선 중기에 커다한 영향을 끼쳤다.
초서 시고 목판 일괄 10판

조선 후기에 중국 당시(唐詩)를 초서체로 써서 서각(書刻)한 작품이다. 10판에 총 19면(面)으로 구성된 이 목판은 병풍으로 만들기 위해 당대를 대표한 서법가의 글씨를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 목판에 당대를 대표한 초서체로 쓴 방대한 이 작품은 문화재급으로 평가된다. 현재까지는 작자 미상이다.

구당 여원구의 글씨 8폭 병풍

야송 이원좌의 산수화 8폭 병풍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모작한 이인실의 8폭 병풍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친필 ‘풍월(風月)’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선조40 ~ 1689, 숙종15)의 글씨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의 낙자(落字)이다. 광풍제월은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염계 주돈이의 인품을 ‘흉중쇄락 여광풍제월(胸中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한데서 온 말이다. 2글자는 일실되고 ‘풍(風)’과 ‘월(月)’자만 남아있다.
심장정(沈尙鼎)의 월과(月課)

제목은 본조(本朝)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황(李滉)의 성학십도이다. 몽오재(夢悟齋) 심상정(1680, 숙종6 ~ 1721, 경종1)이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매월 지어본 글 중의 하나로 퇴계선생이 선조 임금에게 올린 성학십도에 대하여 글을 지은 것이다. 삼상정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응(聖凝), 아버지는 안동부사 집(楫)이며, 어머니는 전주 류씨이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간찰

허목(1595, 선조28 ~ 1682, 숙종8)의 초서 간찰로 말미에 ‘환형(鰥兄)’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아우에게 쓴 것으로 보인다. ‘환형’은 ‘부인을 잃은 형님’이라는 의미이다. 허목은 1653년(효종 4)에 59세로 부인을 잃고 88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청남(淸南)의 영수(領袖)로 한강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박사가 1974년에 미수 허목의 글씨라는 해제가 붙어 있다.
영봉서원기(迎鳳書院記)

성주목사였던 노경린(1516~1568)이 1555년에 도임하여 1558년에 옛 벽진(碧珍) 고을 터에 창건한 서원으로 처음에는 문열공 이조년, 문충공 이인복, 한훤당 김굉필 등 선현을 배향한 서원이다. 하단에 ‘가정 경신 7월 하한 진성 이황(嘉靖庚申七月下澣眞城李滉)’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문은 후대에 퇴계선생의 글을 필사한 것이다. 1560년(명종15)에 이 기문을 지었는데, 이 해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이 낙성되었다.
온계(溫溪) 이해(李瀣) 선생 교지

퇴계 선생의 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 연산군2 ~ 1550, 명종5)에게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에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이해의 본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으로 가정 19년(1540, 중종35)에 받은 교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