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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병일기

임진왜란을 당하여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가 안동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예천을 비롯한 안동 주위의 열읍들을 모아 열읍향병대장이 되어 의병활동을 한 기록이다. 이 일기는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현재 국가문화재 지정을 받기위하여 문화재청에 가 있다.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및 난정서(蘭亭序) 탁본

중국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인 집자성교서와 난정서를 탁본하여 서첩으로 꾸민 책이다. 서예가들이 가장 많이 쓰는 서예교본이며, 특히 난정서는 서예역사상 가장 신품(神品)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책속에 책주 안일호장 한씨(冊主安逸戶長韓氏)라는 낙서가 있다.
이기진(李箕鎭)의 간찰과 시경(詩經) 필사본

목곡(牧谷) 이기진(李箕鎭, 1687~1755)이 장인 에게 올린 간찰이다. 이기진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군범(君範),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시경 필사본은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좋은 책을 보게 되면 밤을 새워서 필사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필사자는 알 수 없으나 옛 선비들의 정성을 볼 수 있다.

오창완의 부채작품

조은림의 부채작품

구당 여원구의 글씨 8폭 병풍

야송 이원좌의 산수화 8폭 병풍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모작한 이인실의 8폭 병풍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친필 ‘풍월(風月)’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선조40 ~ 1689, 숙종15)의 글씨로 광풍제월(光風霽月)의 낙자(落字)이다. 광풍제월은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염계 주돈이의 인품을 ‘흉중쇄락 여광풍제월(胸中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한데서 온 말이다. 2글자는 일실되고 ‘풍(風)’과 ‘월(月)’자만 남아있다.
심장정(沈尙鼎)의 월과(月課)

제목은 본조(本朝)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황(李滉)의 성학십도이다. 몽오재(夢悟齋) 심상정(1680, 숙종6 ~ 1721, 경종1)이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매월 지어본 글 중의 하나로 퇴계선생이 선조 임금에게 올린 성학십도에 대하여 글을 지은 것이다. 삼상정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응(聖凝), 아버지는 안동부사 집(楫)이며, 어머니는 전주 류씨이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간찰

허목(1595, 선조28 ~ 1682, 숙종8)의 초서 간찰로 말미에 ‘환형(鰥兄)’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아우에게 쓴 것으로 보인다. ‘환형’은 ‘부인을 잃은 형님’이라는 의미이다. 허목은 1653년(효종 4)에 59세로 부인을 잃고 88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청남(淸南)의 영수(領袖)로 한강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박사가 1974년에 미수 허목의 글씨라는 해제가 붙어 있다.
영봉서원기(迎鳳書院記)

성주목사였던 노경린(1516~1568)이 1555년에 도임하여 1558년에 옛 벽진(碧珍) 고을 터에 창건한 서원으로 처음에는 문열공 이조년, 문충공 이인복, 한훤당 김굉필 등 선현을 배향한 서원이다. 하단에 ‘가정 경신 7월 하한 진성 이황(嘉靖庚申七月下澣眞城李滉)’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문은 후대에 퇴계선생의 글을 필사한 것이다. 1560년(명종15)에 이 기문을 지었는데, 이 해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이 낙성되었다.
온계(溫溪) 이해(李瀣) 선생 교지

퇴계 선생의 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 연산군2 ~ 1550, 명종5)에게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에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이해의 본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으로 가정 19년(1540, 중종35)에 받은 교지이다.